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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문덕면, 다시 보는 보성 이야기

꽃문어맨 2023. 8. 9. 22:00

문덕면, 다시 보는 보성 이야기

조선중엽(朝鮮中葉)까지 가천현(可川縣)에 속해 있다가 말엽(末葉)에 동복현(同福縣)에 편입되었다.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동복현(同福縣), 문전면(文田面)의 덕봉(德峰), 척치(尺峙), 옥채(玉釵), 장동(長洞), 백사(白沙), 단양(丹陽), 수월(水月), 가천(可川), 율리(栗里), 신운(新雲), 대운(大雲), 무탄(舞灘), 석동(石洞), 강각(江角), 상죽(上竹), 하죽(下竹), 외동(外洞), 외우(外牛), 내우(內牛), 중우(中牛), 곡천(曲川), 장산(獐山)의 22 개리와 보성군(寶城郡) 봉덕면(鳳德面)의 부곡(富谷), 강변(江邊), 내동(內洞), 금천(錦川), 양지(陽地), 법화(法化), 대치(大峙), 동계(東溪), 내판(內板), 축치(축峙), 외교(外橋), 반송(盤松), 마치(馬峙), 반월(半月), 오리(梧里)의 15 개리로 개편하여 문전면의 “문”(文) 자와 봉덕면의 “덕”(德) 자의 이름을 따서 “문덕면”(文德面)이라 개칭하였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 령(令) 제6542호의 의하여 동교리(東橋里)는 복내면(福內面)으로 한천리(寒天里)는 승주군 송광면 재개 편 9 개리로 운영되어 오다가 1985년 1월 17일 주암댐 수몰지역으로 고시되어 가구 및 경지면적의 40%가 수몰되는 실정으로 보성군에서 가장 적은 면(面)이 되었다.

보성군 문덕면 대원사 벚꽃길

백암(白岩) : 문덕면 운곡리

백암(白岩) 마을은 보성강을 건네주던 뱃사공 해주오(海州吳)씨가 1957년경 처음으로 이곳에 집을 짓고 살다가 차차 늘어나 5일 시장이 생기고 각 기관이 옮겨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1985년 1월 17일 주암(住岩) 댐 건설로 수몰되어 없어졌다. 마을의 이름은 5일 시장이 처음으로 생겨 새장터라 부르다가 마을 앞 도로변에 차돌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본떠 백암(白岩)이라 하였다.

대운(大雲) : 문덕면 운곡리

운곡리(雲谷里)는 본래 보성군 문전면의 지역으로서 지대가 높아서 구름이 많이 끼므로 굴목, 굴목 또는 운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운리(新雲里), 대운리(大雲里), 무타리(舞灘里), 석동리(石洞里)와 봉덕면(鳳德面)의 오리(梧里), 마치리(馬峙里) 일부를 면에 편입되었다. 대운(大雲) 마을은 1500년경에 전주이 씨(全州李氏)가 입촌하여 70여 세대의 큰 마을을 이루었으나 농경지가 협소하여 점차 줄어들어 20여 세대에 달하는 적은 마을이다. 마을의 지명은 주변의 산세가 수려하여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운중반월(雲中半月)이란 명당이 있다는 곳으로 마을형성 당시부터 큰 굴목, 큰 골목이라 부르다가 대운(大雲)이라 칭하였다.

 

오리(梧里) : 문덕면 운곡리

오리(梧里) 마을은 1780년경에 함안윤(咸安尹)씨가 정착하여 10여 가구 살다가 주암댐 건설로 수몰되어 뿔뿔이 흩어져 지금은 옛터만 남아 있다. 마을의 지명은 정자나무 주위에서 농사일도 하다가 그늘 밑에서 쉬고, 명절이면 앉아서 쉴 수 있는 우산각이 있는데 오동나무와 버드나무가 많다 하여 “오류” “오류골” “오리”라 하였다 한다.

 

웅치(雄稚) : 문덕면 운곡리

웅치(雄稚) 마을은 1840년경에 제주양(濟州梁)씨가 정착하여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마을에 거주하는 가구수가 적고 영세하여 빈민촌이었으나 주암(住岩) 댐 건설로 수몰되어 뿔뿔이 흩어져 터만 남은 마을이다. 마을의 지명은 뒷산이 모양이 죽은 범(호랑이) 같이 생겨 웅치(雄稚)라고 하였다.

 

무탄(舞灘) : 문덕면 운곡리

무탄마을은 1200년경에 이천서(利川徐)씨가 입 향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1981년 9월 태풍 애그니스로 인하여 마을전체가 수몰되어 많은 재산을 잃고 현 위치에 집단 이주단지를 형성하여 새 터전을 잡았으나 주암댐 수몰로 마을 전체가 이주하는 비운(悲運)의 마을이다. 마을의 지명은 당초에는 마을 중앙으로 시냇물이 흘렀는데 지각변동으로 인하여 냇가가 매립되어 큰 마을이 형성되었다 한다. 그 후 언젠가는 다시 시냇물이 춤을 추고 흘러갈 것이라 하여 “무탄(舞灘)이라 하였다 한다.

 

출처 : 남도일보 , 문덕면 대원사 벚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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