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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서구, 다시 보는 달서 이야기 (4)

달서구, 다시 보는 달서 이야기 (4) 달서구는 서구와 남구의 일부를 분리하여 만든 자치구다. 대구광역시에서 가장 늦게 설치된 구이지만, 2017년 현재 인구가 58만여 명으로 대구광역시 최대 자치구이자, 전국 2위 규모의 자치구이다. 대한민국 경상북도 청송군과 자매 결연한 도시이다. 이곡동 이곡동은 와룡산 밑자락에 있는 마을(성서 동서‧서한아파트 북편)에 배나무가 많았다 하여 배골[梨谷] 또는 매실이라고 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이곡동으로 하였다. ▶갈산동 갈산동은 흔히 갈미라고 한다. 마을 뒷산에 칡나무가 많아 칠 뫼가 갈(葛) 뫼로, 다시 갈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과 또 하나는 갈나무(떡갈나무)가 많았다는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선원마을 김해 허 씨(金海 許氏) 허재라는 선비..

고향 2023. 8. 28. 17:21
달서구, 다시 보는 달서 이야기 (3)

달서구, 다시 보는 달서 이야기 (3) 원래는 달성군 달서면, 성서면, 월배면, 화원면의 일부 지역으로 달서구의 이름 자체는 달성군 달서면에서 왔다. 일단 옛 달서면 지역 일부(두류동, 성당동 일대)가 있는 만큼 달서면의 지분이 없지 않지만, 구의 대부분이 성서와 월배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고 정작 옛 달서면의 대부분은 현재의 서구가 차지하고 있다. 신당동 신당동은 1910년부터 새로 당산제를 올렸는데, 이때부터 이 마을을 신당동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마을의 형태와 관련된 지명유래도 전해진다. 예전에는 큰 비가 올 때마다 홍수가 나서 농토가 황폐해지고 한 해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기에 걱정하던 차에, 1760년 가선대부(嘉善大夫) 김악소(金岳素)가 재물을 희사하여 마을의 침수피해를 막기 위해 마..

고향 2023. 8. 28. 09:13
달서구, 다시 보는 달서 이야기 (2)

달서구, 다시 보는 달서 이야기 (2) 대구 도심부의 남서쪽 관문이며,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이 구의 중심부를 통과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전통적으로 상공업이 발달한 대구의 다른 구와는 달리 공업과 농업이 고루 발달하였다. 구의 북동쪽에 두류공원(頭流公園)이 있다. 본동 조선 중기 이후 대구의 방리로 존치되어 왔던 감물천면의 본동 지역은 일제강점기까지는 대구군(大邱郡)의 감물천면(甘勿川面)에 편재되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매자동과 최령동, 구암리를 합하여 송현동이라 하였다. 1987년 본리동 일부를 남구 본동으로 법정동을 신설하고, 1988년 달서구를 신설할 때 본동을 편입하였으며, 1990년 달서구 송현2동을 송현2동과 본동으로 분동 하였다. ▶가무내 1470년부터 여산 송 씨가 거주..

고향 2023. 8. 27. 17:03
달서구, 다시 보는 달서 이야기 (1)

달서구, 다시 보는 달서 이야기 (1) 달서구(達西區)는 1988년 1월 1일 서구와 남구의 성서 · 월배지역 전역과 기존의 일부를 분리 · 병합하여 총면적 59.69㎢로 인구 285,217명, 14개 행정동으로 달서구(達西區)가 개청 되어 1988년 5월 1일 자치구로 승격하였다. 1991년 4월 15일 달서구의회가 개원하였으며, 1995년 1월 1일 대구직할시 달서구가 대구광역시 달서구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동년 3월 1일 달성군 화원읍 구라리 일부인 2.351㎢가 성서공단 3차 단지로 편입되어 달서구의 총면적은 62.34㎢로 확장 되었다. 1995년 7월 1일 초대 민선자치구정의 출범으로 지방행정에 많은 발전을 가져왔으며, 민선 7기에 접어든 현재 달서구(達西區)는 인구 60만의 거대자치구로서 대구..

고향 2023. 8. 27.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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