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카테고리의 글 목록 (4 Page)
 
HOME
 
좋아요
 
문의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부산시, 다시 보는 부산 이야기 과거 (4)

부산시, 다시 보는 부산 이야기 과거 (4)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한 부산은 여러 가지 산적한 현안을 안고 있었다. 부산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철수, 해외동포의 귀국, 일제잔재의 청산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도 전에 남과 북을 미소가 분할 점령하여 남한은 미군정의 실시로 부산에 미군이 주둔하여 군정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미군정 당국의 행정체계는 일제강점기 행정체계를 그대로 계승하였다. 이후 1947년 10월에는 일본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어 동명의 기본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광복 이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면서, 부산은 새로운 행정체제 속에서 민주적 법치행정의 실시를 추진하였다. 1949년 8월 15일 부제(府制)가 시제(市制)로 개칭되어 비로소 부산..

고향 2023. 8. 22. 12:16
부산시, 다시 보는 부산 이야기 과거 (3)

부산시, 다시 보는 부산 이야기 과거 (3) 부산이란 지명은 부산포에서 유래된 것으로 15세기의 전반기까지만 하더라도 부산포(富山浦)라 하였고, 15세기 후반에 이르러 지금 동구 좌천동에 있는 증산의 모양을 따서 부산(釜山)이라 불렀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부산포는 당시의 독립된 지방행정 단위는 아니었다. 초기에는 동래현과 그 속현이었던 동평현의 관할 아래에 있었고, 그 후에는 계속해서 동래도호부(東萊都護府)의 구역 내에 포함되어 있었다. 조선시대 조선 태조 6년(1367) 동래에 진(鎭)이 설치되고, 병마사가 동래의 행정관인 판현사(判縣使)가 겸임하게 되었다. 한편, 동래현의 속현인 동평현(현 당감동 일대)은 고려 때는 양주의 영현이었으나 태종 5년(1405)에 동래현의 속현이 되었고 동 왕 9년 (14..

고향 2023. 8. 22. 08:11
부산시, 다시 보는 부산 이야기 과거 (2)

부산시, 다시 보는 부산 이야기 과거 (2) 삼국시대 이전의 부산지방은 가야영역에 속한 동시에 가야문화권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1세기 무렵의 부산지방에 있었던 일을 기록해 놓은 것으로서『삼국사기』(44권) 거도열전(居道列傳)에 의하면, "거도는 탈해이사금 때 벼슬하여 간(干)이 되었다. 이때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이 이웃 지경에 끼어 있었는데 자못 나라의 근심거리가 되었다. 거도는 변방 관원이 되어 몰래 이를 병합할 뜻을 품고 있었다. 이에 군사를 일으켜 그들이 준비하지 않은 기회에 두나라를 쳐서 멸망시켰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이 내용은 당시의 사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헌 기록이다. 가야시대 3세기 무렵 부산의 사정은 중국의 문헌인『삼국지』「위지 동이전」에서 엿볼 수 있다. 그 기록 가운데 부산에 관계되..

고향 2023. 8. 21. 21:07
부산시, 다시 보는 부산 이야기 과거 (1)

부산시, 다시 보는 부산 이야기 과거 (1) 부산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부터인데, 해운대 좌동‧중동‧청사포유적에서 발견된 각종 석기의 존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해운대 구석기 유적에서 발견된 석기는 돌도끼, 찍개, 밀개, 긁개, 돌날 등 각종 뗀석기로, 후기 구석기시대에 해당되는 20,000년 전에서 15,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금정구 노포동에서도 구석기 유물이 채집되었다. 신석기시대 8,000년 전에서 7,000년 전쯤에는 식량자원이 풍부한 해안가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조개무지(패총)‧집터‧무덤 등을 형성하면서 부산지역의 신석기시대가 시작된다. 영도구 동삼동‧조도‧영선동 패총 등이 이 시기의 대표적 유적인데, 이외에도 해안에 인접한 다대동‧암남동‧범방패총과 낙동강..

고향 2023. 8. 21. 19:03
이전 1 2 3 4 5 6 7 ··· 12 다음
이전 다음

티스토리툴바

이메일: a067961@gmail.com | 운영자 : 문어맨
제작 : 아로스
Copyrights © 2022 All Rights Reserved by (주)아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