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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다시 보는 부산 이야기 경승지 (4)
시랑대(侍郞臺)는 기장군 기장읍 시랑리 동암마을 남쪽 해변에 있는 바위로 예로부터 기장 제일의 명승지로 알려진 곳이다. 시랑대는 1733년(영조 9)에 시랑직(이조 참의)을 지낸 권적(權樀)이 기장현감으로 부임하여, 이곳 바위에서 놀며 바위 위에 시랑대라 새기고 이를 시제로 삼아 시를 지었다하여 붙은 이름으로 전한다. 이후 홍문관 교리였던 손경현(孫庚鉉)이 학사암(學士嵓)으로 불렀다고도 하나, 지금은 시랑대라는 이름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사랑대
시랑대는 바위 가운데가 넓고 평평한 형태로 되어 있으며, 대의 뒤쪽으로는 기암괴석이 첩첩이 쌓여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뒤쪽 바위 중 큰 두 개의 바위가 맞닿아 있으며, 가운데가 벌어져 돌문처럼 보이기도 한다. 푸른 파도가 시랑대 쪽으로 들이칠 때마다 바위와 맞닿아 부서지며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기도 한다.
해안가에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가 들어서면서 현재는 해동용궁사 남쪽의 바위(臺)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본래 군사 지역으로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으나, 해동용궁사로 인해 접근이 쉬워졌다. 시랑대는 기장 팔경의 하나로 해동용궁사를 찾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이다. 바위에는 지금도 권적이 새겼다고 하는 글귀가 남아 있다.
삼성대
삼성대는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 삼성마을 남쪽에 있는 해변일대이다. 삼성대의 삼성(三聖)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삼성교(三聖敎)에서 모시는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 등을 가리킨다는 설과 원효(元曉)‧의상(義湘)‧윤필(尹弼) 등을 가리킨다는 설, 고려 말의 삼은(三隱)인 목은(牧隱) 이색(李穡)‧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등을 가리킨다는 설 등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의 설은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문헌상의 기록이나 주변의 인문 지리적 환경과도 이렇다 할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는 가설에 불과한 듯하다.
또 달리 삼성대는 ‘세미성대’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성이 있는 듯하다. ‘세미성대’를 줄이면 ‘세성대’가 되고 이를 한자식으로 바꾸면 ‘삼성대(三聖臺)’가 되기 때문이다.‘세미성’의 ‘세미’는 ‘샘’의 사투리 발음이고, ‘성’은 ‘섞’이 발음의 편의상 변이된 것으로 보인다. ‘섞’은 배를 정박하기 위해 배 밑에 대는 나무를 가리키는 말로 요즘의 ‘서까래’와 같은 말로 보인다. 삼성대의 남쪽에 약수터가 있고, 삼성대 앞의 모래사장에는 배를 대기 위한 섞이 깔려 있기 때문에 샘과 섞을 합해져 ‘세미섞’이 되었고 이것이 삼성이 되어 ‘삼성대’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조선 사회에서 윤필과 이색, 정몽주, 이숭인 등을 현자도 아닌 성인이라 칭하였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보다는 ‘세미성대’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성이 있는 듯하다. ‘세미성대’를 줄이면 ‘세성대’가 되고 이를 한자식으로 바꾸면 ‘삼성대(三聖臺)’가 되기 때문이다.
삼성대는 기장에 유배 온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가 1621년(광해군 13) 동생과 이별하면서 「증별소제(贈別少弟)」 2수를 지은 곳으로 유명하다. 삼성대라는 표지석이 세워진 언덕 아래의 바닷가에 2005년 4월 이를 기념한 ‘고산 윤선도 선생 시비’가 세워졌다
황학대
황학대는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해안에 있는 바위이다. 황학대 기장오대(機張五臺) 중의 하나로, 기장과 인근 지역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시상을 떠올리던 곳으로 전한다. 1618년 고산 윤선도가 경원에서 이곳 죽성으로 이배되어 와 6년간이나 유배 생활을 하면서 시‧ 서‧제문 등 29수를 남긴 곳으로 전해진다. 입구의 석벽에 이곳 출신 진사 방치주(方致周)의 이름이 각인되어 있어 후손들이 제사를 올리는 곳이기도 하다. 황학대는 황색의 바위가 바다를 향해 돌출되어 있는 모양이 마치 황학이 나래는 펼치고 있는 모양 같다 하여 붙은 이름으로 전한다.
황학대는 죽성리 남쪽 해안가에 자리한 큰 바위로, 북쪽으로는 죽성천이 동해로 흘러들며, 동쪽으로는 암석 해안이 발달해 있다. 동쪽 암석 해안 쪽으로는 갯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황학대는 본래 송도(松島)라는 섬이었는데, 하천의 퇴적 작용으로 육지와 연결되어 육화되었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수령 100년 이상의 해송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으나 현재는 해송들이 거의 고사하였다. 황학대에서 바다 쪽으로 이어지는 큰 바위산이 있으며 그 끝을 ‘태산도 끝’이라 부른다. 황학대 앞의 죽성 선착장 진입로 바다 쪽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범이 앉아 있는 형상을 한 듯하다 하여 범 바위라고 불렸다. 현재는 방파제 물양장 공사로 인해 파묻혀 일부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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